안중근 安重根 [1879~1910.3.26]


조선 말기 교육가·의사(義士). 황해남도 해주 (海州) 출생.

 

[음양(陰陽)] 陰 陽 陰

[음오행(音五行)] 土 金 木

[자원오행(字源五行)] 木 土 木

[사격(四格)] 6 + 9 + 10

원격(元格): 19 → 고난격(苦難格)

형격(亨格): 15 → 통솔격(統率格)

이격(利格): 16 → 덕망격(德望格)

정격(貞格): 25 → 안전격(安全格)

[총평]

1. 이름자의 의미(자의)

安 편안할 안
重 무거울 중
根 뿌리 근

2. 음양의 배합

陰陽陰이니, 음기와 양기간에 조화를 이루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중용의 도를 지키고, 안정된 삶속에 주위의 협조가 따라 뜻한 바를 이루는 등 길한 흐름의 이름.

3. 순천/역천격

성은 6획이고 이름 첫글자는 9획인 바, 이는 역천격으로서 타인의 말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경향이 강하고 세상의 법도가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법도를 거역하더라도 자신의 판단대로 실행에 옮기는 과단성과 용단성을 지닌 성품.

4. 음오행

음오행은 "土 金 木"으로서, 토생금의 상생은 좋으나, 금극목의 상극이 함께히여 좋지 않음.
"土 金 木"의 오행인 경우 의심이 많은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주위사람의 도움을 통해 일시적인 성공을 거둘수는 있으나, 대체로 의외의 조난이 있어 실패가 많으며, 처자의 인연은 좋지 않은 오행.

5. 자원오행

자원오행은 "木 土 木"으로, 목극토 상극하여 박약좌절, 배신, 의심 등의 흉이 있으며, 불의의 난관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처자의 인연이 좋지 않은 흉한 오행의 흐름.

6. 사격

원격은 고난격(苦難格)으로서 학문에는 성할 수 있으나, 재운이 없으며, 성공을 하더라도 일시적인 성공에 그치고 많은 고난이 있으며, 부모자식간에 이별수가 있다.

형격은 통솔격(統率格)으로서 복덕운이 강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자립하여 성공을 이루며, 타인을 호령할 지위에서 중인의 존경을 받을 길수.

이격은 덕망격(德望格)으로서 총명하며, 재운이 왕성하고, 덕망유복하여 대인관계가 좋아 타인의 존경의 대상이 되며, 부귀영화를 누릴 길수.

정격은 안전격(安全格)으로서 노력을 통하여 자수성가하여 대업을 달성할 길수로서, 재물과 안강다복이 따르는 길수.

7. 이름의 주기

주기에 관해서는 3년주기설, 5년주기설, 9년주기설등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견해인 9년 주기설을 기준으로 평가해보면, 아래와 같은 흐름임.

<7세~15세> 흉

<16세~24세> 길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에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다.

<25세~33세> 흉
1904년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商)을 경영하고 이듬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는 것을 보자 상점을 팔아 1906년 그 돈으로 삼흥(三興)학교(후에 오학교(五學校)로 개칭)를 세우고, 이어 남포(南浦)의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인수, 인재 양성에 힘쓰다가 국운(國運)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듬해 전제덕(全齊德)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겸 특파독립대장(特派獨立大將) 및 아령지구(俄領地區)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嚴仁變)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일군(日軍)과 격전을 벌였으나 실패, 노에프스키[烟秋]에서 망명투사들이 발간하는 《대동공보(大同公報)》의 탐방원(探訪員)으로 활약하는 한편 동료들에게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을 고취하는 데 진력하였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 그 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상(財務相)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고, 동지 우덕순(禹德淳)과 상의하여 승낙을 얻고 동지 조도선(曺道先)과 통역 유동하(柳東河)와 함께 이강(李岡)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만철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곧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旅順]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대승작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