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金庾信 [595~673]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명장(名將)·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가야국(伽倻國)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 손으로, 신라 명장 서현(舒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만명(萬明:신라 葛文王 立宗의 손녀) 부인, 증조부는 금관국(金官國)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이며, 조부는 명장 무력(武力)으로 신주도(新州道) 행군총관(行軍摠管)을 지냈다.
[음양(陰陽)] 陰 陰 陽
[음오행(音五行)]木 土 金
[자원오행(字源五行)] 金 木 火
[사격(四格)] 8 + 12 + 9
원격(元格): 21 → (大吉) 수령격(首領格)
형격(亨格): 20 → (大凶) 허망격(虛妄格)
이격(利格): 17 → (吉) 용진격(勇進格)
정격(貞格): 29 → (中吉) 성공격(成功格)
[총평]
1. 이름자의 의미
金 성 김
庾 곳집 유
信 믿을 신2. 음양의 배합
陰陰陽이니, 陰陰陽으로 음기와 양기간에 조화를 이루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중용의 도를 지키고, 안정된 삶속에 주위의 협조가 따라 뜻한 바를 이루는 등 길한 흐름의 배치.
3. 순천/역천격
성은 7획이고 이름 첫글자의 단자리수는 6획인 바, 이는 순천격으로서 순천격은 하늘의 순리에 따른다, 즉 법도, 관습등 일반적인 자연 이치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그 뜻에 따라 순응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유순한 성품.
4. 음오행
음오행은 "木 土 金"으로서, 土生金의 상생관계와 木剋土의 상극관계가 병존하는 반흉반길의 소리오행.
5. 자원오행
자원오행은 "金 木 火"로서, 금극목의 상극과 목생화의 상생이 병존하는 반흉반길의 오행으로, 조상으로부터의 덕이 없으며, 일의 진행에 있어 난관을 겪게 되나, 지혜와 활동력 및 강고한 추진력으로 뜻을 펼치게 되고 끝내는 뜻을 이루어 부귀공명을 얻게 되며, 많은 사람을 이끌 지위에 오를 수 있는 흐름.
6. 사격
원격은 수령격(首領格)으로서 탁월한 지모와 견실함으로 인하여 대업을 완수하고 부귀공명에 이를 길수.
형격은 허망격(虛妄格) 만사 여의치 않고 중도에 실패할 운과 함께 허망격으로서 단명운이 있는 흉수.
이격은 용진격(勇進格)으로서 강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어, 뜻한 바를 크게 이루고 후일 대업을 성취할 길수.
정격은 성공격(成功格)으로서 신록이 우거진 가운데 과실이 풍성하니, 뜻한 바를 크게 성취하여 공명에 이를 길수. 다만 자기과신하는 경향이 있어 이점을 유의하면 대길할 운.
7. 이름의 주기
주기에 관해서는 3년주기설, 5년주기설, 9년주기설등이 있으나, 전통적인 견해는 9년 주기설로서 이를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아래와 같은 흐름임.
<11세~19세>: 길
609년(진평왕 31)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불린 낭도(郎徒)를 이끌고 화랑정신을 길렀고, 611년과 이듬해 중악(中嶽)과 인박산(咽薄山)에서 삼국통일을 기원(祈願)하고 무술을 닦은 뒤 국선(國仙)이 되었다.<20세~28세>: 흉
<29세~37세>: 길
629년(진평왕 51) 8월 이찬(伊些) 임영리(任永里) 등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할 때 중당(中幢)의 당주(幢主)로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때 적군의 역습을 받은 아군의 사기가 떨어져 싸움이 불리해지자 아버지 소판 서현에게 "제가 벼리와 옷깃이 되겠습니다" 하고 홀로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장의 머리를 베어 옴으로써 승리의 기틀을 잡아 대승을 거두게 하였다.
<38세~46세>: 흉<47세~55세>: 길
642년(선덕여왕 11) 압량주(押梁州:지금의 慶山) 군주(軍主)가 되었고, 644년 소판 벼슬에 올랐다. 같은 해 9월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등 7개 성을 쳐 이기고 이듬해 1월에 개선하였다.
그런데 왕을 알현하기도 전에 매리포성(買利浦城:居昌)이 백제군의 맹공을 받고 있다는 파발에 곧장 상주(上州:尙州) 장군이 되어 출전, 요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647년(진덕여왕 1) 1월 여왕을 폐하려고 난을 일으킨 귀족회의 수뇌인 상대등(上大等)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군을 토벌하였고, 10월 무산(茂山:무주) 등 3개 성을 공격해 온 백제군을 보병·기병 1만으로써 크게 격파하였다. 이듬해 압량주 군주로서 전날 백제에게 빼앗긴 대량성(大梁城: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이어서 악성(嶽城) 등 12개 성을 빼앗았으며, 그 공으로 이찬 벼슬로 승진하고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이 되었다.<56세~64세>: 흉
<65세~73세>: 길
660년(태종무열왕 7) 1월 상대등에 올랐고, 7월 신라 정예군 5만과 소정방(蘇定方)이 이끈 당나라군 13만이 연합하여 사비성(泗姐城)을 함락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661년(문무왕 1) 7월 나당 연합군과 함께 고구려를 정벌하러 가는 도중인 9월 옹산성(瓮山城:대전시 鷄足山城)에 있는 백제의 잔적(殘賊)을 토벌하고, 12월 당나라군의 군량미를 실어다 주었으나 당나라군의 철수로 고구려 정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663년 8월 백제의 부흥군(復興軍)을 두솔성(豆率城:周留城)에서 대파하였고, 665년 당나라 고종으로부터 봉상정경평양군개국공(奉常正卿平壤郡開國公)에 봉해졌다.
<74세~82세>: 흉
667년(문무왕 7) 왕을 따라 당나라군과 함께 고구려 정벌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11월 환군하였다. 이듬해 9월 나당 연합군으로 평양을 칠 때 연합군 대총관이 되었으나 왕명으로 금성에 남아 국방을 도맡았다. 고구려 정벌 직후 태대각간(太大角干:太大舒發翰)의 최고직위에 오른 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673년(문무왕 13) 7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대승작명연구소-